4.19 혁명: *피의 화요일,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 물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

1~3대 대통령을 지내고 4선에 도전하여 재취임을 위해 3.15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이에 대항하여 시위 끝에 이승만 하야 선언

*사할사전투표 비밀지령: 불참+기권표인 40%를 미리 투표함에 넣어라, 계획 실패시 운반도중 표를 바꿔치기하라

*민주주의를 배운 중고등학생의 높은 시위참여

*야당 참관인에 의해 사전투표 적발. 야당은 선거중단을 선헌하는 벽보. 불법선거 무효다. 부정선거 다시하라.

*27일 후 발견된 마산 앞바다 김주열 학생 시신발견으로 시민의 분노를 사 일주일만에 전국적 확산 (허종기자, 박종표 경위)

 

5.16 군사정변: 박정희 군부세력의 청와대 장악.

일년이 막 지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인 세력이 서울의 주요기관 및 청와대 장악.

*당시 내각제, 장면총리는 혜화동 카멜수도원으로 피신, 승인없이 비상계엄령 선포하고 윤보선 대통령에게 사후승인요구, 거절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을 맡게됨. 11개월 만에 장면 내각 붕괴

*잦은 시위와 출세길이 막힌 육사8기의 불만. 쿠데타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없고 국민들은 무관심했으며 장면 총리는 저항을 포기, 장도영은 이중 행동, 윤보선은 타협적 태도를 보였다.

18년동안의 장기집권. 이에 대한 반대시위가 일어남

 

10.26 사태: 측근 김재규의 박정희 피살 (1979년 10월 26일, 남산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안전가옥 나동건물 2층)

박정희,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 차지철(경호실장), 김재규(중정부장), 심수봉(국민여동생), 여성참가자

*10월 4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정치적 고향인 부산 마산 시위(부마항쟁), 유신헌법 발표

*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7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이중약속, 7시 40분 총성, 정승화를 태우고 남산으로 향하던 차는 육본으로 유턴한다.

*야수가 된 심정으로 유신을 쐈다. 도망친 김계원의 증언로 6시간만에 김재규 체포

*10.26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전두환 취임, 보안사령관이 됨 (군대 정보와 기밀을 다루는 수사정보기관)

 

12.12 사태: 1979년 전두환의 신군부 쿠데타. 군대로 정권을 불법 장악.

신군부 세력 퇴진을 외치는 시위확산, 이에 계엄령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시위 진압.

*10.26사태 이후 권력의 공백을 차지한 계엄사령관 정승환 총장을 끌어내릴 작전명 생일집 잔치 시행.

*정총장이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명분으로 체포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결재를 동시에 받는 양동작전 계획

*걸림돌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서울 연희동에 약속을 핑계로 묶어놓았다.

*국방장관 피신, 특전사령부 1,3,5공수 반란군, 즉 군내 비밀사조직 하나회 (육사11기 경상도 출신 전두환 중심 친목모임)

*하나회 1공수 김포서 진격, 9공수 부평서 출발. 이에 각자 철수하자는 신사협정의 전두환의 제안, 지키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장태완, 김진기, 정병주 장군 모두 강제전역

 

5.18 민주화 항쟁: 광주에서 일어난 계엄령 철회와 민주화를 요구한 시위.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내었던 도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은 본보기로 광주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로 함. 계엄군 파병. 광주 출입통제. 내부 소식을 알 수 없게 된다.

시민을 향해 발포. 민주주의를 외쳤던 죄. 맞서싸운 이들은 간첩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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